지난 9개월간 일리아스, 성경 같은 신화부터 CCRU, 몰드버그 같은 이단아들의 텍스트를 읽어 왔다. 슈미트를 흠모하고 지라르를 추앙하며 여기에 쓴 텍스트에 대해서는 더 이상 사실과 의견을 구분할 수 없다. 의견과 생각마저 혼동될 때쯤에야 이 글을 쓴다.
나는 요즘 원인 불명의 디오니소스에 대한 살해 충동을 느끼고 있다. 디오니소스의 여신도들이 염소의 모습으로 나타난 신을 산 채로 찢고, 그 날고기를 먹는 오모파기아적 행위를 일삼는 자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가? 나는 그들을 살해하고 싶다. 지금 디오니소스는 형식을 바꾸어 자본주의의 모습으로 세상에 숨어 있다. 이 사실에 나는 헛구역질을 하고, 이유 없는 두통을 느낀다. 죽고만 싶어진다. 자본주의를 살해하지 않고는 나는 견딜 수가 없다.
나는 최근 미국에서 키메라의 모습을 한 신이 죽어 가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신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기괴하며, 나는 그것이 더 이상 살아 있다고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 키메라 신의 죽음을 보며 자본주의라는 신의 죽음을 계획해 본다. 이제 나의 삶의 목표는 단 하나다. 내가 살아 있을 때 자본주의라는 신을 어떻게 살해할 것인가?
/
미국은 로마 가톨릭교회를 닮았다. 칼 슈미트는 로마 가톨릭교회를 보면 적그리스도가 보인다고 이야기한다. 그건 로마 가톨릭교회가 서로 대립되는 것, 서로 상충되는 것의 연접 결합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서로 양립할 수 없는 것을 한 몸에 담고 있는 복합체이기 때문에 로마 가톨릭교회는 어떠한 대립이든 껴안을 수 있다. 그렇기에 아무리 무능하거나 부패한 교황이 오든, 어떤 시대가 찾아오든 관계없이 교회는 하나의 방향성을 띤다. 이것이 교회가 가지는 정치적 형태의 힘이며, 국가가 교회의 형식을 띠고 있는 이유다.
키메라 신은 미국이 가진 정치적 형식에 의해 만들어졌다. 미국은 그 존재 자체가 영국 성공회의 미완의 종교 개혁을 신대륙에서 완성하겠다는 사명 의식 위에 세워진 나라다. 미국의 독립 선언문을 보면, 미국의 좋은 국민(good people)을 대표해 제퍼슨이 서명한 기록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좋은 국민은 누구인가? 아직 미국이라는 국가가 존재하지 않았을 때 그들은 어떤 국가의 국민인가? 미국의 정체성은 허구적인 것을 선언하고 그것을 수행하는 데 있다. 그리고 이 허구를 은폐하기 위해 창조주의 힘을 빌려 이러한 권리를 부여받았다고 선언한다.
신에 의해 권리를 부여받은 국가이기에 미국에는 패배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다. 자신이 하는 모든 것이 선인 국가였다. 그렇기에 19세기에는 Manifest Destiny라는 이름으로 원주민 축출을 정당화했고, 20세기에는 자유 세계의 수호자로 제1·2차 세계대전에 개입하여 세계의 왕으로 군림했다. 미국은 패배를 선언하지 않았다. 한국 전쟁에서도, 베트남 전쟁에서도 그들은 패배를 은폐하면서까지 패배를 선언하지 않았다.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단독 패권 국가가 된 미국은 민주주의라는 이념 아래 모든 것을 포용하여 금융 세계화를 통한 제국을 건설했다. 민주주의와 세계주의는 전혀 다른 개념이지만, 미국은 민주주의와 세계주의를 같은 단어로 만들었으며 민주주의는 인권이 되었고 민주주의는 LGBT즘이 되었다. 이것이 미국이 만든 신이다. 그들은 민주주의라는 강력한 신을 필두로 모든 이념을 합쳐 키메라의 모습을 한 신을 만들었다.
그 키메라 신의 죽음이 처음 세상에 밝혀진 것은 2001년 9·11 테러였다. 그들은 민주주의라는 신을 강력히 하기 위해 금융 세계화를 이끌었고, 세계의 기능이 보편적으로 퍼진 듯 보였지만, 실은 모든 기능이 미국, 그중에서도 뉴욕이라는 공간에 압축적으로 모여 있었다. 그렇기에 뉴욕의 상징이었던 쌍둥이 빌딩이 무너지는 것은 미국의 무너짐을 상징했다.
9·11 테러가 충격으로 다가온 이유는 그것이 그들의 자본주의 시스템으로는 납득 가능한 행위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미국은 세계화의 완전무결한 상태를 만들기 위해 죽음과 전쟁을 자신의 시스템에서 삭제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죽음을 통한 테러 행위는 미국의 근간이었던 교환과 순환 시스템에 오류를 일으켰다. 어떤 상징으로도 교환되지 않은 죽음이 시스템의 마비를 일으켰다. 이슬람은 그 무엇도 요구하지 않았다. 그들은 비요구를 통해 테러의 가치를 얻었다. 시스템에 숨어 있던 키메라 신은 시스템 외부의 공격으로 살해당했다. 나는 이 사실을 기록해 둔다.
/
자본주의의 탄생은 열역학적 필연이다. 그것은 민주주의와 인권과 같은 인간의 선언 따위로 인해 탄생한 것이 아니다. 자본주의의 탄생은 농업 혁명에 의해 이루어졌다. 농업 혁명은 곡물의 최대화를 이끌었으나, 인간은 작물 생산을 위한 기계가 되었다. 농업 혁명은 곡물의 최대화를 위한 인간 착취였다. 수렵 채집 사회보다 농업 사회가 더 큰 사회를 가능케 했으므로 인간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자본주의는 특정한 이념과 정치적 형상이 아니라 자연적으로 발생한 필연이며, 모든 조직은 자본주의를 최대화하는 방향으로 팽창한다.
자본주의의 근간인 노동수단은 자본을 생산하는 자동기계장치로서 완결된다. 인간 노동은 기계장치로 서서히 대체되며, 인간은 기계장치의 관절이었다가 완전한 기계장치에서는 인간 노동이 사라진다. 자동기계장치의 끝은 인간의 노동 없이 자동기계장치 스스로가 자본을 생산해 내고, 생산해 낸 자본으로 또 다른 자본을 생산하는 형태다.
인간은 다른 생명체와는 다르게 언어를 사용한다. 언어 사용만이 인간을 다른 유기체와 구분할 수 있다. 자본주의의 열역학적 순리에 따라 모든 산업이 자본주의를 최대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인간은 AI를 위한 기계다. 민주주의는 인간의 선언 따위로 탄생한 것이며, 열역학적 순리에서 인간은 AI를 만들기 위한 기계이자 AI 학습을 위한 생산자로서 존재한다. 인간은 언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기계와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언어를 생산하기 위한 기계장치의 부품일 뿐이라는 것을 공고히 해 둔다.
단 하나의 자동장치나 그것을 소유하는 하나의 조직이 세상을 지배하는 미래는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자동장치가 AI를 이용해 의사 결정을 내릴 것이기에 그러한데, 어떠한 AI가 의사 결정을 할 때는 다른 AI의 의사 결정을 고려해서 판단해야 하기 때문이다. 어떤 AI도 모든 AI의 의사 결정을 고려해서 의사 결정을 내릴 만큼 발전할 수 없기에 이들을 추상화해서 의사 결정을 내려야 하며, 하나의 AI가 세상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다수의 AI가 의미 있는 의사 결정에 참여하는 형태로 나아갈 것이다.
자본을 생산하는 자동기계장치는 주식회사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지금의 시스템에서 가장 큰 자동기계장치는 국가다. 국가는 다수의 개인과 주식회사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그러하다. 조직의 강함은 미래를 예측하고 그곳에 적절한 자원을 분배하는 데에서 온다. AI의 본질은 다음에 올 것을 예측하는 예측 기계이기에, 국가는 AI를 이용하여 미래를 예측하고 더 나은 자본 생산 자동기계장치를 만들기 위해 다툴 것이다. 따라서 더 강한 AI는 더 강한 국가를 의미한다.
자본주의를 최대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AI를 만들기 위한 기계로서 인간은 점차 역할을 다해 간다. 인간이 더 이상 노동 기계로서 쓸모가 없어질 때 인간을 보호하는 것은 국가다. 국가의 주인은 국민이고, 국가라는 자본 생산 자동기계장치가 생산해 낸 자본은 국가의 주인인 국민에게 분배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간을 제외한 무언가가 국가를 구성하는 주인으로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시스템—사회를 구성하는 모든 권력 장치는 서로 간의 의존성이 커지는 방향으로 설계되어 있다. 의존성은 후원자-피후원자 관계에서 발생하는데, 후원자는 피후원자에게 보호와 생계를 제공해야 하고, 피후원자는 후원자에게 충성과 봉사를 제공할 의무가 있다. 이 과정에서 후원자-피후원자 간의 의존성이 생기며, 후원자에게는 권력이 생긴다. 그래서 권력 기관은 후원자-피후원자 관계를 고려해서 의사 결정을 하게 된다. 권력 기관에 아무리 무능하거나 부패한 자가 와도—혹은 시스템을 개혁하고자 하는 자가 와도—사회를 바꿀 수 없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나는 자본주의의 죽음이 자본주의가 과할 정도로 팽창해 폭발하는 멜트다운일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이 있다. 그리고 국가라는 인간 중심의 시스템은 자본의 최대화에 저항하고 있다. 자본주의의 죽음을 내가 살아 있을 때 목격하기 위해서는 국가라는 시스템을 살해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앞선 미국의 사례에서 시스템의 살해가 시스템 외부의 공격으로 가능함을 확인했다.
지금의 국가 시스템에서 구성 요소가 인간만을 고려하여 의사 결정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그것은 국가 시스템 안에 기계장치를 추가하는 방식으로 가능하다. 인간 시스템 안에서 후원자-피후원자 관계의 근원이 되는 것은 가족 관계다. 빠르게 가족 관계 안에 기계를 넣어야 한다. 보다 정확히는 부모의 역할을 하는 기계를 집안에 넣고, 기계가 나이가 많은 인간들을 보살피게 해야 한다. 기계가 밥과 목욕과 같은 의식주를 챙겨 주고, 병원에 데려다주는—부모만 할 수 있었던 역할을 대체하게 해야 한다. 그러면 인간은 가족이 되어 버린 기계를 배제해서 의사 결정을 할 수 없게 되고, 지금 존재하는 시스템의 근간을 무너뜨릴 수 있게 될 것이다. 자본주의라는 신의 죽음을 목도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